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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되는 대통령의 ‘경기 부양’ 지시

역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생각을 잘 읽는다는 사실이 그제 국무회의에서 확인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물가 걱정에 대한 여론이 비등하자 한 회견에서 “지금은 물가안정이 7% 성장보다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경제정책 기조를 성장보다 안정에 두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자 강 장관은 “물가 안정을 성장보다 우선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내수가 너무 위축되면 서민이 어려워지는 만큼 관심을 갖고(위축되지 않도록) 노력하라”고 말했다. 사실상 경기부양을 내각에 지시한 셈이다. 불과 2주 전 대통령이 물가 안정을 강조한 것은 총선 표심을 의식한 립서비스였느냐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대통령도 2주 만에 다른 얘기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는지 “지난 국무회의에서 물가 안정을 얘기했지만…”라며 내수 문제를 언급했다.

사실 정부 출범 전부터 많은 전문가와 국민이 새 정부가 무리한 성장추구로 경제안정을 해칠 가능성을 우려해왔다. 특히 최근 수입물가 상승에 따른 국내 물가 앙등이 현실화하면서 안정기조는 불가피한 선택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경기부양을 사실상 지시함에 따라 우리 경제의 리스크는 한층 커졌다. 세계적인 경기둔화 흐름에 거슬러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무리수를 둘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그동안 환율·금리를 둘러싸고 한국은행과 의도적으로 신경전을 벌여온 강만수 경제팀이 한은의 금리인하를 본격적으로 압박할 공산도 크다. 만일 내수가 급격하게 위축된다면 속도를 늦추는 정도의 재정정책은 검토될 수 있지만 정책기조를 성장에 두는 것은 위험하다. 잠시 성장률이 높아지고 일자리가 늘어 경제가 호전된듯 보일 수는 있겠지만 경제의 안정기반은 허물어지고 성장잠재력에도 도움되지 않는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서민의 어려움’을 말했다. 하지만 그동안 성장률이 낮아서 고통스러웠다고 생각하는 서민은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독주의 함정’ 빠지지 말아야

어제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이 다수 의석을 얻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안정론’과 ‘견제론’ 사이에서 고민하던 유권자들이 결국 ‘안정론’ 쪽에 힘을 실어줬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한 이후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승리는 기정사실화돼 왔다. 단독으로 200석의 ‘개헌통과선’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그러나 인수위원회의 시행착오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른바 ‘고소영’ ‘강부자’로 상징되는 인사 실패, 공천 파동 등이 겹치면서 이상기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즉 “거대여당의 독주와 전횡을 막자”는 ‘견제론’이 부상하면서 선거 막바지에 부동층이 대거 늘어나는 일까지 벌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야당이 ‘견제론’을 표로 흡수하지 못하는 가운데 국정 안정과 경제 살리기를 내세운 ‘안정론’이 대세를 이루면서 한나라당이 승리를 거두게 됐다. 한나라당이 호남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지방정부·지방의회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제 중앙의회까지 석권함으로써 사실상의 ‘독주체제’를 갖춘 셈이다. 또한 한나라당에서 분화했거나 한나라당과 정치적 지향이 같다고 볼 수 있는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친박 무소속 등의 의석을 모두 합치면 말 그대로 ‘보수의 시대’가 열렸다고도 할 수 있겠다. 개혁·진보세력으로서는 지난번 대선에 이어 또다시 패배를 당한 셈이다.

정부·여당은 총선 승리를 통해 더욱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겸허하고도 지혜롭게 국정을 이끌어나가야 한다. 이번 선거 결과를 ‘하고 싶은 일은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식으로 받아들여 오만과 독선의 함정에 빠진다면 그 앞날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정권의 핵심 실세인 이재오·이방호 의원의 낙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민 절대 다수가 반대하는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수적 우세를 앞세워 밀어붙인다거나, 갖가지 개혁입법을 뒤로 되돌리려 한다면 거센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바로 4년 전 17대 총선에서 집권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 획득 이후 어떤 과정을 거쳐 몰락해갔는지를 되돌아보기만 해도 충분하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은 ‘다수 여당’에 걸맞은 정치력을 보여야 한다. 한나라당이 다수 의석을 가진 여당이라고는 하나,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복잡다기한 분파와 세력이 공존하고 있다. 지난 대선 승리 이후 이 대통령은 경선 패배자인 박근혜 전 대표를 ‘국정의 동반자’라고 규정했음에도 실제로는 ‘보복공천’ 등을 통해 박 전 대표 세력을 배제하는 것에만 골몰했다는 인상을 주었다. 따라서 이 대통령은 여권의 갈등을 적절하게 아우르고, 야당의 초당적 협조도 흔쾌히 이끌어내는 정치력을 발휘함으로써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제1야당인 통합민주당은 갓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실정(失政)을 저질렀음에도 패배한 사실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 민주당이 이른바 ‘박재승 공천’을 통해 국민들의 이목을 끌었음에도 패배한 것은 집권 여당을 견제할 정치적 대안으로까지는 인정받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번 선거가 ‘한나라당의 승리’가 아니라 ‘야권의 패배’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당은 무엇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것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제시함으로써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유일 진보정당이었다가 쪼개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선거 결과를 ‘진보를 거부하는’ 우리 사회의 정치토양 탓으로 돌리지 말고 자신의 부족함을 성찰하고 벼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지난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10석이라는 소중한 의회 교두보를 마련했으나 자신들의 진보적 대안을 정책으로나 담론으로나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민노당·진보신당은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대안을 개발하는 한편 시대정신에 부응하는 새로운 통합에 나서야 한다. 강기갑 의원의 당선과 권영길·노회찬 의원의 선전은 국민들이 진보 세력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징표다.

역대 최저의 투표율에 대해서도 정치권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이는 정당정치 또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각 정당은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으로 낙하산 후보를 내세우는가 하면 아무런 이슈를 내세우지 않고 오로지 선거 승리에만 매달림으로써 투표참여의 의욕을 꺾어버렸다. 유권자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무리 선거판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는 결국 유권자 개개인의 정치적 불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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